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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제성산공원은~김제 성산성(城山城) 유적지(발국조사기간:2016.5.2.~11.30.)

똘물사랑 2020. 8. 4. 11:29

김제성산공원은~

김제 성산성(城山城) 유적지(발굴조사기간:2016.5.2.~11.30.)

이곳 성산성은 김제시의 주산(主山)인 성산의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테뫼식 토축산성이다.()산의 한자표기에서 알수 있듯이 이곳은 오래전부터 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, 1918년에 편찬된 김제군지에 토성과 석성의 이중 성곽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성터에 대한 명확한 고증이 없었다. 이에 2016년 김제시와 전라문화유산 연구원이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통일신라~고려초 세차례에 걸쳐 흙으로 쌓은 판축(板築)성벽인 것으로 확인되었다. 그러나 가장먼저 지어진 최하층 성벽의 축조 기법, 재료가 통일신라시대 이전부터 사용됐던 것임을 고려하면 드 이전 시기(백제시대)에 지어졌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으며, 그간 이설이 많았던 백제부흥운동의 근거지인 주류성과 피성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. 또한 중요국가시설로 이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관()자가 찍인 기와와 국가기관으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발견되는 등 예로부터 최대의 곡창지대인 김제평야를 볼 수 있는 성산이 역사적으로나 지형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임을 알 수 있다.

테뫼식: 산을 둘러쌓은 방식 토축산성: 흙을쌓아 만든 산성 판축성벽: 판으로 트를 만들어 그 안에 흙을 넣고 번갈아 가며 방망이 등으로 다져 단단하게 쌓아올리는 방법으로 만든 성벽 피성(避城): 66212월부터 6632월까지 백제부흥군의 지휘부 치소가 있던 곳으로 주류성(부안우금산성)이 방비는 쉽지만 식량조달이 어려워 물질과 정신문화가 풍요로운 피성(김제)으로 천도하였으나 나당연합군의 압박으로 다시 주류성으로 물러났다.